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것이 알고싶다/2016년 방영 목록 (문단 편집) === [anchor(1020)]1020회 / 2월 27일 /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 - 끝나지 않은 추적[* 제보수집 및 방영전만 해도 업소명이 이니셜처리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업소라서 그런지 실명공개 처리되었다. 술집 이름은 [[태국어]] 단어로 편안함을 뜻한다고 한다.] ★ === '''영구 미제 사건.''' [[2013년]]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 미제가 된 사건이다. [[1998년]] [[6월 14일]] 오전 2시 30분경 [[강남구]] [[신사동(강남구)|신사동]] 지하에 위치한 사바이 단란주점에서 20대로 추정되는 남성 3인조가 업주와, 그녀의 지인이었던 택시기사, 손님 등 세 명을 살해하고 한 명에게 중상을 입혔던 사건에 대해 다룬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8/nwdesk/article/1997232_30723.html|당시 MBC뉴스 보도]], 또한 동 방송사의 [[경찰청 사람들|공개수배]] 프로그램에도 방영된 적이 있다. 사건 당일은 [[차범근호|대한민국의 프랑스 월드컵 본선 첫 경기]]가 열리던 날이었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축구중계 시청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산해진 거리에서 손님을 찾던 한 택시기사는 한 건물을 지나치다가 하의가 벗겨지고 숨이 겨우 붙은 채 지하계단을 기어오르는 생존자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최초 출동한 경찰도 쉽게 다가가지 못 할 정도로 사건현장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사건 현장은 물이 틀어져있어서 바닥에 흥건했으며 접시, 컵, 병등 기물들이 깨진 조각들로 흐트러져있는 상태였다. 3명의 사망자들은 묶인 채 난자당해 너무나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여성 피해자 한 명은 '''목 앞이 크게 그어져있었으며''' 또 다른 여성 피해자 한 명의 '''입은 턱 한쪽까지 깊숙히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범인들은 피해자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칼로 잘랐는데, 이는 꽤나 상궤를 벗어난 듯한 범행과정이었다. 당시 경찰에서는 2만 명이나 되는 공권력 수사를 동원했다. 용의자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방송에서 쓰인 가명도 아닌 당시 수배전단에 배포되었던 갑, 을, 병으로 지칭되고 있다. 주범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갑'은 뚱뚱하고 나머지 두 명은 비교적 마른 모습이었다한다. 생존 피해자는 수술끝에 살아났지만 지금도 [[PTSD]]에 시달리고 있다고한다. 그나마도 죽다 살아난 수준으로 폭행당해서 초기 진술에는 말을 하기가 힘들어 육필진술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범인들이 계속 있다면 4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리라고 한다. 사건의 전개는 이렇다. 1) 1998년 6월 13일 저녁 10시 직후, 살해당한 피해자의 언니가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범인 3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1번 방으로 들어간 용의자들. 처음에 용의자 갑이 도우미를 요구했으나 용의자 을이 아가씨를 부를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등 용의자들끼리 의견이 엇갈려 결국 양주 한 병과 과일을 주문해서 먹었다. 당시 이들은 노래방에서 [[최유나]] - 흔적, [[박강성]] - 장난감병정, [[박상민]] - 하나의 사랑, [[녹색지대]] - 준비 없는 이별 등 5곡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2) 6월 13일 저녁 10시 20분 무렵, 사바이 단란주점 인근에서 역시 가게를 운영한 생존자 최 씨가 지인이자 사망한 피해자 김 씨가 술 한잔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요청하여 함께 손님으로 들어와 2번 방으로 들어갔다. 3) 얼마 안 있어 용의자들이 2번 방에 있던 최 씨와 김 씨에게 합석을 제안하여 잠깐 술자리에 합석을 했으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피해자들은 다시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4) 6월 13일 약 11시 50분 경. 당시 가게를 보던 피해자의 언니는 같이 단란주점을 경영하는 여동생에 노래방 관리를 넘기고 축구경기를 보기 위하여 퇴근했다. 5) 6월 14일 새벽 12시 무렵, 단란주점 오너의 지인인 택시기사가 단란주점에 들어와 피해자와 함께 축구 경기를 시청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vs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멕시코]]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프랑스 월드컵]] 첫 번째 본선경기 시작. 6) [[하석주]] 선수가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넣고 몇 분 안 되어 백태클로 인해 퇴장당했던 전반전이 종료되었던 시간이 약 6월 14일 새벽 1시 30분 무렵. 이 때 피해자의 언니는 피해자에게 가게 상황 등을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단란주점은 평화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7) 6월 14일 새벽 1시 30분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생존자가 화장실을 가려 방을 나왔을 때, 택시기사와 3명의 용의자 사이에 단란주점 카운터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을 최씨가 목격. 8) 최씨는 화장실을 간 이후 방으로 복귀했지만 그 직후 갑자기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이들의 범행이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범인이 피해자가 소지하고 있던 금품을 뜯으려 시도했는데, 피해자가 금품을 넘겨주지 않으려 하자 범인들은 피해자를 잔인하게 구타하였고 여자들은 겁을 먹고 피해자 택시기사는 말로 해결하자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생존자 최씨는 우리들 사정 역시 여의치 않다고 말했지만 범인들은 당시 상황이 [[외환위기|IMF]]였기 때문이었는지 자기들도 직장에서 짤렸고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라는 투의 말을 최씨에게 했다고 한다.[* 당시 범인들의 주량은 양주 3병가량으로 추정된다.] 범인은 모든 피해자들을 결박하고 고문하듯 찌르고 죽였다. 9) 용의자들이 여러 증거인멸 시도를 한 후, "시간이 없다! 빨리 가자!"라는 말을 하면서 도주했고 생존자 역시 많이 찔렸지만 다행히 급소를 피해갔기 때문에 숨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범행장소에서 죽은 척 하고 있었고 범인들이 죽은 건지 아닌지 확인해보기도 전에 급히 도주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경찰은 용의자들의 도주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당시 사바이주점 일대에는 CCTV도 별로 설치되지 않았고, 탐문수사 등을 통해 경로를 추정했지만 더 이상의 목격자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사건 현장에서 범행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었으나 채취된 시료들중 DNA는 남아있는 것 조차 (당시 기술로) 불분명하게 되었고, 지문 31개 중 그나마 남은 8개의 지문이 있었으나 모두 사바이 단란주점 관계자들의 지문으로 추정되었다고 한다. 강도라고 보기에는 피해자 시신에 귀중품 일부가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그나마 카드 몇개나 일부 귀금속을 범인들이 뜯어갔으나 카드 이용내역이나 장물 거래내역은 전혀 발견하지 못 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다시 기어나오기 시작하던 조폭범죄의 일환이라 추측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조폭들이 주로 강남에서 활개쳤고, 당시 한 양복점에는 조폭들이 양복을 맞출 때 칼을 넣을 칼집까지 맞춰달라고 하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생존자도 범인의 흉기가 단순한 주방칼 수준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범인이 현장에 남긴 물건 중 칼집이 있는데, 그 칼집의 모양새는 생활에서 쓰일법한 칼들과는 거리가 있는 '특수부대용 단검' 내지/'스쿠버용 비상용 칼'으로 추정되며 칼끝에 톱날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사바이 술집에 대한 이권을 노린 범죄는 아닌지에 대해서도 수사했는데, 원래 사바이는 유명인사가 들르던 요정에 부속된 술집이며, 2차 목적으로 조성된 것에 가깝다. 게다가 당시에는 식당 장사가 어려우니 술집도 안되어서 정황상 조폭이 이권을 노릴 건더기는 없었다. 저 사바이조차도 사건당시 생긴지 채 1년도 안 된, 정확히는 8달 정도 된 신생술집에 가까웠다. 당시 형사들은 피해자 남자(택시기사)를 노린 청부살인 가능성도 수사했지만. 피해자 남자의 지인은 순박한 사람이라면서 '원한설'을 부정하고 있다. MBC의 공개수배 프로그램에도 이 사건이 방영되었고 이때 들어온 제보로 한 사람을 잡았지만, 범인이 아니었다. '''그저 몽타주상의 범인과 너무나도 닮아있었을 뿐이었다(...)'''[* 경찰이 강압적으로 수사한 탓에 범인으로 오인받던 남자는 이성적으로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조리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어느새 자신이 제가 죽였다고 자백을 하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수사관이 범행이 일어난 그 날 월드컵 중계로 대한민국이 들썩였다는 게 기억 안 나냐고 하자 그제서야 당시 본인이 집에서 가족들과 월드컵을 시청한 것을 떠올렸고 알리바이가 확인되어 풀려날 수 있었다.] 프로파일러들은 이것이 '''우발적'''이라는 의견을 지배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범인들은 범행 전에 자신들을 목격하고 그 현장을 떠난 목격자(피해자의 언니)를 만들어버렸다. 생존자 증언에서는 범인들이 범행 직후 신문지로 지문을 급히 지우려 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그리고 뭔가 트는소리가 났는데 처음에는 자신을 완전히 (불태워) 죽이기 위해서 가스를 튼 거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물을 틀어놓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물을 계속 틀어놓음으로서 피를 제거함과 동시에 혹시라도 남아있을 지문을 제거하기 위함으로 추정된다.] 이정도로 범행 전후 처리가 어설픈 것으로 봐서 이 사건의 동기가 우발적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담으로 범행현장을 설명할 때 미니어처 디오라마에 시체는 목각인형으로 대체한 구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범인이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자른 유사 살인사건 사례로 영국의 '헤어컷 살인사건'이 언급된다. 이 사건은 페티시목적으로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명백하게 밝혀져서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자른 것도 혹시 페티시의 일환이 아니었겠냐는 의문을 제시하지만, 프로파일러들의 의견에 따르면 '페티시성' 범죄는 수치심 등을 이유로 보통 1인의 범인이 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어 이 사건처럼 여러 명이 함께 저지른 사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확실한 건 정도를 넘어선 분노가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우발적으로 보기에는, 범인들은 이미 살인도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주범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갑은 짧은 스포츠형 머리였고, "죽은 것을 확인하라" 등의 지시를 을과 병에게 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프로파일러는 범인들(특히 갑)을 갓 출소한 전과자라 추정하였다. 갓 출소한 전과자가 주점 등에서 행패를 부리는 일은 빈번하다고 한다. 그러나 범인 모두가 숙련된 범죄꾼이라 볼 수는 없는 점이, 피해자들의 손목을 묶은 케이블타이를 반대방향으로 묶는 어이없는 실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 케이블타이는 제대로 묶을경우 성인남성의 힘으로도 풀기가 힘들지만 역방향으로 묶으면 묶는 힘이 약해져서 어이없게 풀어지는 경우가 있어 생존자가 쉽게 손목을 풀고 탈출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공범들 간 범죄성에는 차이가 있었다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당시 수사팀이 놓친 증거로 고무골무가 발견되었는데. 이 고무골무의 사용처는 공장사람들이 정전기방지를 위해서 끼는 경우가 있고 과거 인쇄소에서 제본작업과정[* 지금은 거의 디지털로 넘어가서 이러한 도구는 쓰이지 않는다. 다만 1998년이라면 충분히 가능했을거라고 본다.]에 쓰는 거라 하는데 피해자중 한명은 이러한 직업군에 관련되어 있지 않나 추정하고 있다.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은 이들의 살인은 당시 악명높았던 지존파 사건처럼,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사회적 불만을 동기로 하는 범죄가 늘어났던 당시 사회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살인같은 방법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심리적 동기를 지적하였다. 사건이 잊히는 동안, 당시 형사 중 하나가 그 사건 수사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사망한 노래방 주인의 외아들은 결국 어머니를 잃은 이후의 삶이 힘들어서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후일담이 나왔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났으나 형사소송법상 해외도주 중인 범인은 공소시효가 정지하기 때문에 범인들이 해외로 도주했을 경우라면 검거하여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례로 19년전 [[대구광역시]]에서 일어난 한 살인사건은 범인이 중국으로 밀항 후 도주생활을 했는데, 작년에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중국에서 귀국했지만 해외도주 중에는 공소시효가 정지하여 결국 어이없게 잡힌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에 관해 제보한 한 현직 강력계 형사는 이 사건을 제보하게된 계기가 된, 현재 수사 중이라 하는 다른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는데 이 사건은 비공개 수사인지, 어느정도 수사가 진행되면 진행상황을 그알 팀에 전달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마지막은 '범인들이 이렇게 변했을거라 추정하는 몽타주'를 제시하고, 진행자 김상중이 비록 2000년 8월 이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폐지가 이루어졌지만 이번 사건처럼 재범의 가능성이 특히 높은 사건은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2000년 8월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일지라도 공소시효 폐지가 적용이 되어야 하며 당국이 이러한 논의를 해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또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용의자들이 만약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꼭 전해줄 말이 있습니다. 공소시효 기간 동안 숨죽여 산 시간이 죄값을 대신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린 당신들이 누구이며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끝까지 추적할 것입니다."''' 라며 용의자 3명에게 경고를 주는 것으로 방송이 끝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